자작글-022 432

지팡이

지팡이 /인보/ 2022.12.2 관절음이 시쿰새콤 울어댄다 노송이 시들 때 가지 베어 내 버티는 힘 덜어주는 것처럼 지팡이로 버티려 작정 어디 한 군데 멀쩡한 곳 없다 처방하고 대치하고 달래고 마지막 막장까지 견디겠나 살살 달래 과부하를 덜려 외출용 지팡이를 가지려 했다 지팡이들이 먼저 알아 보내왔다 스틱이 어깨를 겨누어 머리 조아리며 동반해야 하나 반송하기로 한 지팡이를 보면 지팡이에 미안하다 든든하고 사랑스러운 지팡이

자작글-022 2022.12.02

동화사 범종소리

동화사 범종 소리/인보/ 2022.12.1 차디찬 벽장에 갇힌 소리 자비의 망치 후려칠 때 음향의 파동이 퍼진다 우주공간이 출렁거린다 파동이 나무에 앉으면 숲으로 번져 나가 대지엔 파란 카펫이 깔린다 차디찬 철갑에 갇힐 때 여기가 삶의 터전인가 삶이 시리도록 차가웠다 자비를 안고 하늘 날면 대지는 파란 지문이 찍힌다 구름과 조우하면 비를 내리고 범종 마지막 행로 대지를 살찌워 희망의 소리로 내려앉는다

자작글-022 2022.12.02

공든 탑 무너지는 소리

공든 탐 무너지는 소리/인보/ 2022.11.30 배고픔을 참고 쌓은 탑 우뚝해 세계에 위용 떨친다 선대가 이룩한 탑 빨대 꽂으려 헤매는 젊은이보다 빨대 꽂고 풍요의 들판을 뒹굴고 호사 부리는 이 많다 골라 먹어야 배부른 자 더 편해지려 더 굵은 빨대 꽂으려 아주 빨대 뽑고 꽂은 샘 마르게 한다 탐 무너지는 소리 붉은 여우 짓는 소리 기우뚱 소리 나자 불붙는다 소화전 작동해서라도 공든 탑은 지켜야 한다 ​

자작글-022 2022.12.01

노년에도 바람이 인다

노년에도 바람 인다/인보/ 2022.11.30 이만큼 세월을 갉았으니 단맛 쓴맛보고 왔다 가는 바람 앞에 등불 깜박깜박 엠블란스 소리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노년을 바라보는 창문들 고운 시선을 바라지 않는다 훅 불면 날아갈 가랑잎이라 생각하지 말라 가끔 눈알을 현혹하게 하는 꽃을 보고 위에서 아래로 내딛는 불끈한 생각 한 묶음 그걸 노년에 이는 바람이다 젊은 곡선과 팽팽한 바짓가랑이 앞장서면 생각하나 솟아 눈가를 스치는 엷은 바람이 인다 밭에서 뽑아 버린 쇠비름처럼 비만 맞으면 생생한 바람 인다 아니 생각 한 꾸리 둥둥 울릴 때도 있다

자작글-022 2022.11.30

끼리끼리

끼리끼리 /인보/ 2022.11.29 개망초꽃 하나 콩알 하나 별것 아니다 끼리끼리 멸치끼리 꽁치끼리 떼거리로 몰려 봐 이만큼 뭉쳤으니 떼거리로 밀고 나가자 어디든 발붙인 클로버 같은 야금야금 제 영역을 넓혀간다 옥토를 몰래 삼킨다 방방곡곡 어디든 끼리끼리 세력을 펼친다 돌개바람 회오리바람 확 불어 올린다 언제까지 불 줄 아냐 밤에 먹은 새알 날이 새면 토해낸다

자작글-022 2022.11.29

당신의 그늘

당신의 그늘/인보/ 2022.11.26 가슴엔 당신을 품고 있어 항상 든든하고 때로는 돌자갈 자갈자갈 때로는 애호박 동글동글 손잡고 뒤뚱거려도 마음 편했지 하룻밤 비운다는 것 몸 안에서 빠져나가는 것이다 못 믿어 밥은 어디 있고 반찬과 국은 어디 있고 어떻게 꾸며 밥상 차리라 당부한다 김치 담그는 딸애들의 모임에 갔어도 맘속엔 당신을 보내지 않았으니 괜찮아 다만 허전한 빈자리가 엄청 넓다 딸애들 모임에 내 그늘이 스며있을게다 그늘 벗어버린다는 일은 연이 끊기는 것이다 거기 그늘이 배어 진한 모성애가 뒤끓을 것이다 날이 새면 빠져나간 듯한 당신이 고스란히 그늘 짊어지고 온다 함께해서 닮아있는 그늘은 어디 간들 변화는 없다

자작글-022 2022.11.26

까만 밤

까만 밤 /인보/ 2022.11.26 밤 11시 마지막 알약을 털어 넣으면 오늘의 분량은 끝난다 밤을 잊을 시간이다 ‘잘자’내일은 수요일 아무도 문밖까지 와서 호명하거나 찾아갈 곳 없어 그 뒤 또 한쪽 방에는 적막한 밤은 사유하나 끌어내기 좋을 시간을 책을 뒤적거리거나 경전을 읊거나 하지 메모지는 재촉한다 배 채워달라고 밤을 까맣게 잊는 것이 좋아 때로 오전 10시 해님이 철썩 따귀 한 대에 깜짝 놀란 적 한두 번 아니다 몰래 살짝 아내의 침실 아직 TV는 혼자 떠들고 밤을 잠재워 까맣게 물들인다 어렴풋이 비치는 아내의 얼굴이 천사가 잠든 듯 안녕을 가슴에 찰싹 붙이고 문 닫는다 까만 밤으로 삭이는 동안 통증도 함께 삭인다 길조가 대문 앞까지 와서 재재거린다

자작글-022 2022.11.26

자동이체

자동이체/인보/ 2022.11.25 인터넷 세대에 승차한 한자 세대가 둔해진 것 속도감이다 자동이체 다음은 태평하고 무심해진다 갑자기 은행 통장을 불 켠 듯 꼼꼼히 밝혔다 갖가지 자동이체는 제 양만큼 흘러갔다 다만 통신 요금이 과하게 이체됐다 ARS는 으스름한 귀가 캄캄한 미로를 헤매게 했다 겨우 밝은 출구 찾으니 아가씨 목소리 들린다 상냥한 말씨 친절에서 고운 심성이 흘러 9개월간 과부하 이체는 무심의 대가로 만족했다 상냥한 친절은 고객 만족 인터넷 시대에서 늙은 눈이 번쩍 빛난다 자동이체를 가끔 점검하라

자작글-022 2022.11.26

젊은 세대의 사랑법

젊은 세대 사랑법/인보/ 2022.11.24 처녀 끼를 덜 벗은 엄마 아이 하나 철철 넘치는 사랑 가마 태워 길러 싸늘한 가마가 있는 줄 모른다 우리 아파트 단지 내 유치원 퇴원하는 아이를 사랑 끈 칭칭 묶어 애완견 몰고 가듯 한다 한 편 안겨 고집부리고 때 쓰는 아이를 안고 오다 공원 의자에 내려놓고 달래고 어르고 듣지 않자 한번 겪어 보라는 듯 모른 척 그만두고 가버린다 혼자 몸부림친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잠들고 말았다 요즈음 아이 하나 아니면 둘 욕구는 모두 오냐 오냐 좌절은 없다 ‘오냐, 오냐 아니, 아니’를 내포한 육아가 사랑이다

자작글-022 2022.11.26

수화기

수화기/인보/ 2022.11.23 102번과 105번 수화기는 고주파용이다 12시에 만나 점심식사를 약속했다 아닌 걸 당일 10시에 11시에 11.30에 벨이 울린다 약속 시각이 조급한가 맘이 조급한가 식탁에 앉자 메뉴를 정독했으면 좋을 걸 윗니가 없어 반만 슬쩍슬쩍 맛은 느꼈을까 송화기 입술은 쉴 새 없이 달싹달싹 상대 수화기는 고주파용인 걸 이웃 식탁까지 울림은 민폐 장님끼리 소통하는데 헤드라이트 밝아 고주파 소통의 괴로움이 얼마나 시원한가

자작글-022 2022.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