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글-022 432

만약 그녀가 애인이 된다면

만약 그녀가 애인이 된다면/인보/ 2022.11.12 많은 꽃은 저마다 향기도 얼굴도 다르다 우연의 기회에 화원에 들렀더니 성숙한 그녀의 낯빛이 뭔가 흡입력이 보여 자석처럼 끌린다 끌리지 않으면 수벌 행동이 마법에 있을 것 그녀의 마음 구석이 비어있음을 보인다 기름진 밭에 유독 종기처럼 우뚝한 바위 옳지 이것 때문에 그녀의 마음이 비어있군 나도 끌린다 그러면 그 바위를 채워 준다거나 덮어 그녀의 빈 마음을 채워주면 어떨까 가뭄 든 밭에 수로를 끌어들여 물을 뿌리면 좋아하지 않으리 마음은 착착 굴러가는데 어쩐지 시곗바늘은 거꾸로 돌고 있잖아 찰싹 밀착하면 찰떡 표면에 쓴 즙이 난다 정말 애인이 되었다면 쓴 즙은 단 즙이고 쓴 즙을 흘릴 턱 없지 눈에 명태껍질 찰싹 붙은 것을 벗고 밝은 햇살이 정신 차려 꽃..

자작글-022 2022.11.12

만약

만약에/인보/ 2022.11.12 얼굴을 노출해도 타인이 전혀 인식하지 않는다면 바람의 눈을 볼 수 있겠다 마음에 드는 친구나 여인이 온다 그 앞에 섰다 매롱 하는 사이 얼굴이 보인다면 얼마나 놀랄까 금고를 털거나 사기 쳐서 남을 곤경에 빠뜨린 짓 이건 인생 밑바닥 구더기다 노파가 파지 고물을 잔뜩 싣고 끄는 모습 보고 뒤를 밀어주고 가난한 자에 찬바람의 눈을 돌려주고 봄바람 끌어 주면 편히 지낼 것을 부당한 말로 대중을 선동하는 자에 따귀라도 갈려 깨우쳐 줄 수도 있겠다 만약이라는 가정법에 예속하지 말자 노력이 닿는 가상공간일지라도 허풍을 매달지 말자 만약 그 알맹이는 실속이 꽉 찬 가정법 만약이다

자작글-022 2022.11.12

할일 없음

할 일 없음/인보/2022.11.11 무계획 날이 새면 밥 먹고 공원 돌고 자판기 두드리고 TV 보고 화분 들여다보고 거실 빙빙 돌고 무위 고를 삭이느라 하루가 허무하게 느낀다 여기 공짜 구경 있다 우르르 저기 무료 급식 있다 와르르 감나무 밑에 감 떨어지도록 입만 벌려 기다리는 꼴 이게 고통이다 버럭버럭 아프지 않으니 그 무리 세월의 독침에 버틸 수 없어 먼저 떠났다 남은 자리가 공허하게 느낀다 꽃은 피고 지는 것 세월은 오고 가는 것 기다리는 자엔 오고 버리는 자엔 가는 것 직전의 일이 신변을 위하는 일이라면 직후의 일은 신이 앞에서 이끌지 몰라 아무도 예상 못 할 일 닥치지 말고 할 일 없는 손에 볼펜이 안기면 낙서라도 실컷 해야지

자작글-022 2022.11.11

구절초

구절초/인보/2022.11.11 어쩌다가 가난한 외딴집에서 태어났다 여기 대대로 이어 온 구절초 마을 또래들 훌훌 털고 도시로 해변으로 크게 성공하지도 못하고 밥 먹을 정도 여기 뿌리 내려 굳어만 간다 한창 꽃향기 품길 때야 매파는 줄줄이 잇고 세상 부러운 것 없어 주가는 상장을 치고 정상을 올랐으면 하산해야지 꽃은 시들어가고 매파는 발이 끊기고 은근히 걱정되고 그때 그만 허락했더라면 후회한다 까짓것 혼자 살 수 있어 벌 나비 찾아올 얼간이 있겠나 적막한 밤 형광등이 깜박깜박 눈물 흘린다 괜찮아 독신주의 꽃들아 당당 하거라

자작글-022 2022.11.11

팔공산 순환도로를 달리다

팔공산 순환도로를 달리다/인보/ 2022.11.10 늦가을 오후는 느긋하다 도로 양편 울긋불긋 차림 아가씨 손 흔들어 맞는다 가을 산을 즐기려는 젊은 남녀들 무리 지어 아가씨가 아가씨를 마주하여 좋아한다 단풍에 젖은 바퀴는 울긋불긋한 궤적을 그린다 온 산천이 거나하게 취해 이들 거친 바람도 붉어 콧바람과 섞여 이골 저 골을 훑는다 가을 뒤꽁무니를 겨울이 물가라 다그친다 술 깨면 가겠노라 한사코 버틴다 여유로운 늦가을 오후 팔공산 순환도로는 마지막 단풍 즐기려는 차들 모두 단풍에 젖어 돌아온다

자작글-022 2022.11.10

격동하는 사춘기

격동하는 사춘기/인보/ 2022.11.9 가슴에 파릇파릇한 떡잎 땅 봉긋 떠밀고 세상 풍경 살핀다 시냇가 버들 먼저 찾아온 봄이 물 올려 버들강아지 박가분 냄새 피운다 *페닐에틸아민의 향 지하수 샘솟듯 풍긴다 수나방들 모여들어 그만 몽롱해진다 격동기의 풍랑은 끊임없이 절벽을 철썩철썩 통과의례를 치르는 중 진달래 만발한다 * phenylethylamnlne 사랑할 때 일어나는 호르몬 행복과 쾌감을 일으키는 호르몬

자작글-022 2022.11.09

미늘 하나

미늘 하나/인보/ 2022.11.8 유년은 손톱마다 *생채기가 괴롭힌다 호미 낫 지게가 우르르 몰려와 온몸에 찰싹 붙으니까 냉방 얇은 포대기 야전군 훈련보다 쓰리다 가장 생동하는 글자 ‘가르칠교’를 품었으니 견뎌 나갔다 생의 대평원을 달리는 활동기 파도 없는 대해를 항해 좋았다 명패를 반납한 이 자리 시어로 도배한다 시 한 편 편집한 장마다 **미늘이 깊숙이 박혀 굳이 빠져나가려 파닥거리지 않았다 더 깊숙이 미늘이 박힐수록 생채기는 흔적 없고 문장은 익어 은유의 꽃 필 날을 기다린다 *손톱에 나는 작은 상처 ** 낚시 끝 안쪽에 있는 고기가 물면 빠져나가지 못하게 뾰족한

자작글-022 2022.11.08

제5병동

제5병동/인보/ 2022.11.7 다리 부러졌거나 발목이 부러졌거나 신체의 일부가 부러진 환자들의 병동 깁스 접목한 묘목에 비닐 테이프로 칭칭 감아 푸른 이파리 돋을 시발점이다 이 병동은 신음은 입 봉하고 입실한 듯 아무도 신음하지 않는다 다리 골절환자가 들어서자 절뚝절뚝 아야야 아야야 하더니 뒤따른 울림이 없다 밤만 되면 여기저기 신음이 유령의 울부짖음이다 귀가 간지러워 벌떡 잠에서 일어났다 아무 소리 들리지 않아 쌔근쌔근 이 소리가 신음이다 앓고 있는 환자들 아무도 신음하지 않고 아무도 다친 데 없어 금방 퇴원한다 제5병동은 시곗바늘이 반대로 돌고 아픔 없는 병동은 너무 적적하다

자작글-022 2022.11.07

낚시

낚시/인보/ 2022.11.7 여자대학교는 여학생만 바다 물고 떼와 같다 매일 아가미 벌름벌름 문자의 먹이로 배 채우는 일 일과는 문자로 시작 문자로 끝맺는다 한창 물올라 대해를 향할 꿈 물고기의 특유의 향일 뿌린다 인근 숫 고기는 콧구멍 벌름벌름 일망타진은 무모한 짓 가장 예쁜 점찍어 놓고 낚싯밥을 놓는다 수놈의 기질 보여주어야 해 어깨 떡 벌어진 넓은 앞가슴으로 포용하고픈 마음을 낚시 미끼로 그의 앞에 어슬렁거리면 용모에 혹해 사향을 뿌린다 옳지, 기다리면 되겠다 물었다 놓았다 망설이는 군 재빨리 낚아챘다 파닥파닥 저항은 시늉이다 내 품에 들어 온 것을 놓칠 수 없지 한평생을 품에서 행복을 담보할게

자작글-022 2022.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