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긋난 시간 어긋난 시간 호 당 2011.6.25 오전 11시에 모이라는 연락은 전날 받았다 즐겨보는 아침 TV 한 프로는 나를 잊게 했다 그리고 또 컴퓨터는 나를 끌어당겨 시간을 잊게 했다 나를 잊고 시간을 잊는 것은 무아경 無我境이었을까 내가 무아경지 無我境地에 빠졌다면 나는 어떤 상태였을까 흘금 쳐다본 시각 화.. 자작글-011 2011.06.26
폐경기 폐경기 호 당 2011.6.25 그때까지만 해도 그 논은 질퍽했었다 나는 새벽이면 논두렁을 걸터타고 자라는 벼 싹을 쓰다듬었다 항상 나를 따르는 암캐는 제 가랑이를 쳐들고 핥고 있었다 왕성한 지력에 알맞은 기온과 달콤한 시간은 풍년을 기약할 수 있었다 올해 들어 수척해 버린다 갈아엎은 논바닥이 하.. 자작글-011 2011.06.26
복덕방 (공인중개) 복덕방 호 당 2011.6.24 유리 창문에 빈틈없이 붙은 매매시세표 거기서 복덩이 하나 움켜잡을까 마음이 다급한 사람 내가 이룬 끈이 턱없이 짧아서 안타깝고 좀 모자란 끈이지만 처분해서 씁쓸하고 마음이 느긋한 사람 시세 차이를 얻어 흐뭇하고 그 복덕방은 달고 쓰고 미지근한 물로 고였다 주인은 이.. 자작글-011 2011.06.24
코코아차 한 잔 코코아차 한 잔 호 당 2011.6.24 갓 사회로 튀어나온 나 코코아차 한 잔으로 선생님과 마주했다 찻잔에 담긴 코코아차에 수수께끼 같은 막막함과 낯섦과 미로의 두려움과 촌스런 머뭇거림을 눈치채고 너의 곳인 이런 차는 없느냐 사회를 잇는 교량을 뒤뚱거림에 코코아차 한 잔으로 완전히 드러나고 아.. 자작글-011 2011.06.24
얼빠진 사람 얼빠진 사람 호 당 2011.6.23 어디 거머쥐려 해도 잡히지 않고 눈 닦고 봐도 보이지 않는 것이 앙금으로 빠져버려 사리를 밝혀 생명을 지탱하는 조향장치랑 제동장치 같은 것이 벌레 먹어버린 사람 밝은 시간의 골짜기에서도 어두운 시간의 포효로 다가와서 명암의 경계는 소용없는 바위 같은 것 불과 물.. 자작글-011 2011.06.23
사과 하나 사과 하나 호 당 2011.6.23 샛빨갛다 매우 예뻤다 너무 높았다 모두 품에 안겼는데 감히 내게 손을 뻗칠 수 없었는가 외로웠다 곧 한파가 밀려온다는데 펼치지 못하고 이대로..... 자작글-011 2011.06.23
관계 관계 호 당 2011.6.22 첫날밤은 찬란하고 가슴 부풀었다 다음 날 포성을 밀어내려 훌쩍 떠난 그는 포성에 잠겼는지 그녀는 물망초 한 그루 가슴에 품고 살았다 엄격한 사서삼경의 음률에 대나무 숲 그늘은 그녀를 묶어 놓았다 밤이면 깜박거리는 호롱불 천장에는 쥐들의 속삭임 낮이면 아무데나 즐기는 .. 자작글-011 2011.06.22
그 찻집의 여자 그 찻집의 여자 호 당 2011.6.19 까맣게 잊고 있었다 우연히 스치다 들렸다 그 찻집의 앳된 아가씨는 많이도 퇴색된 빛깔이 되었다 짓누르는 세월이 그렇게 했을까 예전만큼 애교는 늙었고 예전만큼 설치지 않았네 벌써 중년이 되어서일까 풀잎만큼 풋풋한 향기가 사라졌고 완숙한 중년이 쏟는 향기지만.. 자작글-011 2011.06.19
화림동 그늘 화림동 그늘에 호 당 2010.6.16 끼리끼리 모인 주름 잡힌 입술들 새떼처럼 날아와 그늘에 앉았다 불판 돼지고기 흰 연기를 둘러싸고 마음을 익히고 거기 양기와 음기의 마음이 서로 녹고 한데 익어 고기보다 더 고소하다 캠핑(camping) 젊음을 불태웠을 낭만의 한 귀퉁이를 나도 붙잡고 시간을 되돌려보나 .. 자작글-011 2011.06.19
물망초 물망초 호 당 2011.6.18 물결 출렁이는 연못가였나 새소리 춤추는 동산이었나 거기서 늦게 피웠던 연보라 꽃 한 송이 훈훈한 바람에 날릴수록 짙게 향기 흩날리고 미소 띤 꽃 한 송이 한들거렸던 것이 가슴 깊이 향 뿌리고 훌쩍 떠나 버렸구나 그 꽃 이름이 뭐더라 나를 잊지 말아요 물망초였지. 자작글-011 2011.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