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글-022 432

푸른 산

푸른 산/인보/ 2022.10.1 잡목으로 뒤덮은 산을 보라 넓든 좁든 온갖 잎사귀로 위선을 가려 푸르게 갈무리한다 영문 모르는 이 좋아하지 선보다 악이 더 많은 줄 모르니까 더 나아가 때때옷 입고 눈을 끌어모은다 때가 오면 한파에 찬 서리 온다 선명하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지 이런 날 올 줄 몰랐단 말인가 홀라당 드러내 벌거숭이 임금님 어찌하오리까 혹한을 견딜 각오는 했는지 일목요연하게 드러내자 그제야 알아차린다

자작글-022 2022.10.01

億億億

億億億/인보/ 2022.9.30 억이란 금 혁대를 칭칭 감은 사람들 입에서 쉽게 억 억 소리 낸다 나는 그런 혁대 없거니와 익숙지 않아 억장이 무너진다 지난 5년간 쌀 창고 헐어 버리는 순간 재주부린 곰에서 쉽게 억 억 억 길바닥 농산물 몇 점 풀어 놓고 고개 숙이는 이는 억 소리에 화들짝 놀랄 것이다 萬圓이 하늘에서 내려 보던 지난 적 지금 내 어깨에서 나를 짓누르며 내 무게를 아느냐 한다 금 혁대 하나쯤 두른 이는 쉽게 억 억 억이란 말 쉽게 내 눈높이 무게는 무거워 萬 萬만 외치다가 시대에 뒤떨어져 부끄러워한다

자작글-022 2022.09.30

극성

극성/인보/ 2022.9.29 김치냉장고는 필수품이 가끔 얼어붙어 극성스러운 아내의 마음을 얼어붙게 한다 한 치의 오차도 용서하지 않은 직각 나를 닥달뜨려 얼음 제거는 나를 얼게 한다 서랍을 열고 얼음 덜어내는 일은 두 달 전에 내 손으로 한 것이 안되어 구시렁거리는 것이 얼음처럼 딱딱 얼어붙는다 내 속을 확 얼려 놓았으니 난들 녹일 재간이 없다 숟가락 달그락하는 일이야 얼마나 쉬운가 요령 모르고 옷 벗기고 달려들어 당기고 밀어 넣고 쑤신들 손상은 냉장고의 몫이다 결국 시범 자의 익숙한 놀림 내 실습은 익숙해질지 극성이 누그러지면 내 몸놀림도 쉽게 빠르게 움직인다

자작글-022 2022.09.29

돌의 말

돌의 말/인보/ 2022.9.29 팔거천 굵직굵직한 돌이 물이 훑고 간들 그르려니 말 없다 침묵은 금이라는 금과옥조를 깨트릴 때가 있다 폭우와 장마로 큰물이 밀려와서 돌과 돌의 말이 극성을 부린다 저들끼리 언쟁은 이유 있는 소리 머리가 깨어지고 모서리가 달아나고 서로가 겪는 격돌의 결과는 상처뿐 침묵을 깰 때 포효하듯 성깔이 너와 나의 몸으로 대항이다 주위가 고요할 때 성자가 되지 잠자는 사자를 깨워 성가시게 해 봐 성자는 악마로 변한다 돌의 말이 침묵할 때 성자가 된다

자작글-022 2022.09.29

겨울 풍경

겨울 풍경/인보/ 2022.9.29 바깥은 영하의 날씨로 밤을 지새운다 새벽을 깨우는 자명종이 성가시다 커튼을 걷고 보니 유리창에 겨울이 다가와 자기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손가락을 대자 냉동한 이빨로 깨무는 듯하다 유리창에 그려진 겨울의 성정 그는 얼음장 같은 싸늘한 성격으로 한 치의 양보는 없다 냉혈동물이 내 목을 감는다 하얀 이빨을 벌려 깨물 듯 깨물 듯 내 손이 움칠하다 겨울의 성정에 항거하려는 우둔한 짓 타협이다 난로를 지폈다 애인과 같은 얼굴이 가득하다 겨울이 급히 달아난다 밖은 까치 한 마리 추위에 떨고 냇물이 얼어붙어 봄이 언제 올는지 기다린다 유리창 안과 밖은 온대와 한대이다

자작글-022 2022.09.29

태풍

태풍/인보/ 2022.9.28 이때까지 데우거나 훑어 내거나 하얗게 덮어씌우거나 얕은 바람 불거나 짓궂게 지근거린다 한치도 허락하지 않지 태풍과 폭우로 인정사정없이 밀려온다 겁에 질려 묶고 조이고 잘 가꾸어 놓은 내 몸의 털 지켜주겠지 아닌 걸 우락부락한 억센 힘에 감당 못해 그만 눕고 만다 온몸 경련이 쓰나미로 밀려온다 이 쾌감을 감당 못할 지경이다 뽑히고 부러지고 계곡으로 모자라 온몸으로 흘려보낸다 내 몸 한 모퉁이가 무너지거나 떠밀려간다 이건 태풍이 핥고 간 흔적이다

자작글-022 2022.09.28

숙제

숙제 /인보/ 2022.8.27 학생으로 남아있는 한 숙제는 맘이 무거워 괄약근이 조바심한다 숙제 없는 날 이건 철봉 오래 매달리기 시합에서 버티는 고통이 그만 손 놓는 순간 맑은 냇물이 솰솰 흐르는 날이다 학생으로 남고 싶어 스스로 채찍질한다 시림 詩林의 일원으로 피톤치드는 물론 들숨 날숨이 맑지 않고 어찌 시림에 서 있겠나 내 맘의 숙제는 내가 제시하고 내 올가미 쓰고 내가 앓는다 허허 들판을 헤맨다 무시래기 한 타래 엮어 거풍한다 숙제는 숙성 중이다

자작글-022 2022.09.28

동천공원

동천공원/인보/ 2022.9.27 우리 아파트 옆 동천공원에 들면 가설 연극무대가 펼친다 무대 배경은 살아 숨 쉰다 메타세콰이아가 진을 치고 하늘 찌르고 느릅나무는 무대 질서를 책임지는 도우미다 어린이 놀이기구는 소품 무언극이 펼치면 내 눈은 홀려 옛날이 생각나서 격세지감을 느낀다 젊은 엄마가 유아 손잡고 모정 듬뿍 뿌리는 모습이 우리 엄마 생각난다 어린이 떼가 킥보드를 타고 공원을 누비는 것은 연못의 백조 같다 연인은 손잡아야 화끈 달아올라 연분으로 불그레한 서광이 빛난다 남녀 학생들은 연극무대에 입장하면서 스마트폰에 눈을 떼지 않는다 무대 귀퉁이에서 백수가 연극무대를 보고 별식처럼 군침 흘리는 모습이 이색이다 출연 배역이 다채롭다 몇 막 몇 장인지 헤아릴 수 없는 연극무대 동천공원

자작글-022 2022.09.28

목 디스크

목 디스크/인보/ 2022.9.26 끄떡없이 잘 견딘 젊은 시절 목이 푸른 계절은 한 시절 끝 목이 고꾸라진다 목 디스크라 한다 가깝다는 것뿐 생각 없이 한방에 들렸다 냉침을 막 꼽아 온몸이 오싹 시원해진다 온탕 냉탕 마음대로의 시절 지금 냉탕은 생각조차 싫다 한방은 찬바람으로 다스린다 내 목은 눈 덮인 고산이나 준령을 누비며 하산을 꿈꾸지 않는다 목 디스크는 한 대로 고정되는 듯하다 아닌 걸 젊은이들 등산 차림으로 개미떼거리처럼 기어오른다 이 사람들 나처럼 목 디스크 환자인가

자작글-022 2022.09.26

큐브

큐브/인보/ 2022.9.25 그 많은 면의 마음이 뭉쳐있다 이걸 들고 회전하거나 비틀어 한 마음이 될 때 깔깔거리는 장면을 보면 행운이 온단다 이 뭉치를 처음 대하는 여인처럼 서툰 언어로 떨리는 가슴 짓누르고 비틀어 마음을 떠본다 그녀의 낯빛이 시시각각 변하면서 나를 조소하는 듯 혀를 날름거린다 너와 나는 한 테이블에 마주하여 대화는 늘 엇박자로 교묘히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 나는 그때마다 이리 틀고 저리 틀어도 태연한 듯 받아넘겨 색깔을 달리한다 나는 익지 않은 살구를 내 것인 양 따려 하고 그녀는 빛 좋은 개살구로 나를 실험하듯 낯빛 좋게 대한다 아무리 좋게 보여도 일제히 같은 색깔로 깔깔 웃기는 틀렸다 처음 맞는 큐브를 비트는 짓은 빛 좋은 개살구 같은 여인을 맞나 내 애인으로 만들려는 허튼수작이다

자작글-022 2022.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