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요술 바람의 요술 호 당 2009.12.31 흔적 없거나 잠잠하다가도 벌컥 성깔 부리면 어디든지 마구 휘두르는 너 보이지 않는 넋으로 보이지 않는 색깔로 잠깐 흔적 새기다가 지워버리고 나보다 앞질러 가다 사라진다 때로는 상냥한 여인의 입술 같다가 때로는 성깔 부려 포효하는 사자로 변하면 그냥 놔두지 않고.. 자작글-09 2009.12.31
시클라멘 시클라멘 호 당 2009.12.30 그해 겨울 베란다에서 첫돌내기 어린애처럼 오들오들 떨고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방긋거린다 진분홍의 얼굴에 깔깔거리며 나에게 달려왔을 때 덥석 안아 볼에다 내 체취를 묻어주고 싶어 와락 끌어안았다 입가는 아직 젖 냄새가 가시지 않은 볼그레한 단물이 뚝뚝 흐르는 듯.. 자작글-09 2009.12.30
오리고기 구이 오리고기 구이 호 당 2009.12.28 핏빛 짙은 살코기가 사라진다 뒤뚱거리며 생을 펼칠 때 만해도 암내 꽁지 매달렸거나 알 품기의 본능을 했을 것인데 약육강식이란 이유로 삶의 잔해殘骸를 난도질당해야 했다 말문 닫은 생이 깊은 화독에서 사라질 때 눈물과 애통 속에 한 줌의 재로 남지만 오리는 생의 .. 자작글-09 2009.12.28
시간의 여정 시간의 여정 호 당 2009.12.26 쪼그리고 앉아 하늘을 바라본다 불러도 대답 없는 시간은 잘도 스쳐간다 알 수 없는 낯선 시간은 또 몰려 올 것이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내 앞을 스치는 시침 소리 그렇지만 내 낯바닥에 주름 잡힌 골짜기는 메말라도 시간의 검은 버섯은 돋아 마음을 우울하게 한다 제아무.. 자작글-09 2009.12.27
짙은 안개 짙은 안개 호 당 2009.12.24 생동하는 자연이 낳은 미세한 물방울들의 매혹스러운 춤에 내 눈을 경망스럽게 현혹하게 하여 이성을 잃을 정도 한 치 앞을 달려나가 비밀스런 장막이 뚫려도 수수께끼 같은 미로로 혼미 시킨다 강한 햇볕이 꾸짖어도 끄떡없이 버티면서 입 틀어막아 속수무책 남쪽에서 바싹 .. 자작글-09 2009.12.25
대합실 노숙자들 대합실 노숙자들 호 당 2009.12.24 하이힐을 비롯하여 신발들이 낯바닥을 문질러 그 열기로 바글바글 끓는 냄비의 물방울이었다가 점점 누그러질 무렵 외진 모퉁이는 내 공간 라면 상자 한 장 바닥에 깔면 과분한 침대 채 가시지 않은 활자들의 향 냄새를 얼굴만 덮어주면 일등 여관방이 된다 많은 눈총 .. 자작글-09 2009.12.25
동지 ♣ 동지 ♣ 호 당 2009.12.22 잠시 내 앞까지 다가오다 물러간 너 너의 빈자리는 검은 그림자로 가득 메워‘ 오들오들 떨어야 하는 긴 밤이다 너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것 같다 그녀에 그렇게만 편애한다면 여타엔 상처 입는 불공평한 일 오늘 최대의 편애로 그만 끝내자 팥죽 한 그릇 드시고 조금.. 자작글-09 2009.12.22
대둔산 대둔산 호 당 2009.12.21 감히 쳐다볼 수 없는 너의 위엄에 한 가닥 희망을 품고 너 앞에 멈췄다 내유외강의 너의 품위에 그만 좌절할 뻔했다가 용기백배하여 간청했다 오 그대 너그러운 미소로 내려주신 사닥다리 그래도 조심스레 떨리는 마음으로 올랐다 정상은 포근했다 멀리서 너를 흠모하는 듯 보이.. 자작글-09 2009.12.21
기축년을 보내며 기축년(2009)을 보내며 호 당 2009.12.30 천천히 새 옷 갈아입을 차례 기축년의 질긴 옷이 어떤 부분은 찬란히 눈뜨고 어떤 면은 질긴 연민이 이곳은 헤진 구멍이 가지가지의 형상으로 이룩된 옷가지를 훌훌 벗어 던지고 새 옷 경인년의 산뜻한 옷을 갈아입고 새 기분으로 날자 뛰자 행복하자 그간 소찬에 .. 자작글-09 2009.12.20
복권 한 장 복권 한 장 호 당 2009.12.18 몸을 움츠리는 겨울날 길가다가 복권 파는 부스를 발견하고 우쩍 김에 복권 한 장을 샀다 그때 새파란 이파리 한 장이 하늘을 두둥실 날고 꽃가마 타고 선녀가 나풀거린다 반면 날개 찢긴 새 한 마리가 빈 봉투를 물고 서쪽 하늘을 넘는 걸 보고 이상한 느낌을 들었으나 그래.. 자작글-09 2009.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