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행退行 퇴행退行 호 당 2009.11.26 같은 교실에서 꿈꾸던 친구들 앞을 향해 잘도 달린다 맨발로 땅을 헤치거나 외나무다리는 물론 높은 사닥다리를 잘도 오른다 나이테 불어난 만큼 쑥쑥 커가지만 나는 물컹하고 오그라들 뿐 같이 햇볕 쬐면서도 자꾸 뒷걸음질만 치는 나 앞서간 동료만 멍하니 바라본다 人生七.. 자작글-09 2009.11.26
참나무 참나무 호 당 2009.11.25 구수산 등산길은 참나무 군락지다 참나무가 하나같이 상처입은 흔적 한 짐씩 지고 있다 돌림병에 맞아 상처 입었는가보다 상처 아물 때 얼마나 고통이 있었을까 나도 가운뎃손가락 손톱에 상처의 흔적을 갖고 있다 어릴 때 일이라 지금은 기억조차 없다 지금 참나무는 고통의 추.. 자작글-09 2009.11.26
불면증 불면증 호 당 2009.11.24 불면증이란 놈이 새벽을 깨워 논다 꿈이란 놈도 어둠을 피해 물 건너 가버리고 불면증을 벗어나지 못하는 괘종시계는 즐겁다고 똑딱 똑딱거리지만 나는 그놈 때문에 괴롭다 명과 암을 구별 못 하도록 취해야 되지만 아무리 시간을 마셔도 취하지 않는 나 불면증이란 놈 때문에 .. 자작글-09 2009.11.24
아직 덜 익은 향이다 아직 덜 익은 향이다 호 당 2009.11.20 이름도 당당한 꽃들이 널리 선망받는 꽃들이 수런대는 언어로 요염을 엇바꾸고 짙은 향을 뿌린다 때로는 자기만의 향으로 주위를 사로잡기도 하는데 향기도 맵시도 별 볼일 없는 꽃 한 포기는 감히 자기 향 뿌리기조차 움츠린다 아직 향이 익지 못한 것도 있지만 그.. 자작글-09 2009.11.22
팔만대장경판 팔만대장경판 호 당 2009.11.19 내 머릿속에 팔만대장경판과 글자 수만큼이나 좋은 인자가 스며 있다면 지금쯤 멋진 시 한 편을 끌어낼 수 있는 영험이 나올 법도 한데 이 사람아 자네 머리는 나쁘지 않아 지금 해인사로 찾아가게 팔만대장경판을 보고 영험을 얻어보게 자비로 가득 찬 해인사에서 팔만대.. 자작글-09 2009.11.19
눈물-1 눈물-1 호 당 2009.11.16 웃음의 은막에 가린 비애의 찌꺼기 입에 쓴 카페인을 머금은 고통의 후예들 웃음과 함께 찾아 와 헉헉거리다 지쳐 내린 땀방울 오랜 이별 끝에 그리움이 새파란 풀잎에 맺은 이슬 기쁠 때 펼치는 은방울 슬플 때 펼치는 녹가루 덩이. 자작글-09 2009.11.16
버리면 천대받는다 버리면 천대받는다 호 당 2009.11.16 은행잎이 새파랄 때 팔랑거려도 사랑받았지만 노랗게 시들자 싫증난 가구처럼 떨어버려 길바닥에서 뒹군다 더구나 칼바람이 미친 듯 휘두른 칼자루 피하려 닭장에 닭 쫓기듯 우르르 몰려 처박히는 모습이 민망스럽다 길바닥에서 함부로 짓밟혀도 괜찮다는 것일까 .. 자작글-09 2009.11.16
장미 장미 호 당 2009.11.14 한창 물오를 나이에 붉게 수줍음 타는 그녀에 휘파람 불어 윙크하면 하마 가슴 울렁거리고 온몸이 빨개져 버린다 그렇게도 순수했던가 마음 주는 줄만 알고 무례하게 손 한 번 잡으려 하자 얼어붙은 가슴에 날카로운 독기 세운다 아름다움에 아름다움으로 다가가야지. 자작글-09 2009.11.14
법주사를 찾아 법주사를 찾아 호 당 2009.11.13 마음이 얼어붙지나 않았는지 딱딱한 아스팔트 위를 뒹구는 헝클어진 낙엽 밟고 걷는다 더디게 찍어 놓는 발자국에 그늘이 덮는 것 같다 산 댓잎 밟고 온 찬바람 맞고 으스스 참회의 소름 돋는다 대웅전 풍경소리가 부처님의 마음으로 내리는데도 미처 깨닫지 못한 마음 .. 자작글-09 2009.11.14
옥수수 서리 옥수수 서리 호 당 2009.11.12 몰래 옥수수밭을 기어간다 잘 익은 처녀처럼 머리꼬리 치렁치렁하다 그중 미끈한 것 가려 사정없이 낚아채자 찍소리 한 번 지르고 그만 항복한다 눈에 띄지 않는 밀림지대에 숨어 겹겹이 입은 옷을 벗겨간다 한 꺼풀 한 꺼풀 벗겨 갈수록 엷은 옷 마지막 한 꺼풀 벗기니 뽀.. 자작글-09 2009.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