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글-013

슬렁거리는 논두렁

인보 2013. 11. 4. 17:04

      술렁거리는 논두렁 호 당 2013.11.4 너른 들판이 무논이다 모를 심고 벼로 추수할 때까지 마음 졸였다 술렁거릴 때가 제일 좋았다 어린 새끼 물가에 내어 놓은 것처럼 한눈팔지 않았다 나 보라는 듯 가슴 펴고 키웠다 여름 아가씨 종아리처럼 미끈미끈하게 키워냈지 푸른 혈기로 통통하게 배 키워 아기 밴 아낙이다 곧 해산한다 온 들판이 해산의 기쁨으로 슬렁거린다 햇살이 내리쬐어 축복한다 바람에 파도쳐서 슬렁거린다 저들끼리 올차게 키워 냈다고 비스듬히 누웠다 일어섰다 내게 기댔다 슬렁거리는 파도 타고 부산하다 나도 가슴 설렌다 풋내기에서 완숙으로 가는 여정 누렇게 익는다는 것은 완숙이다 오래 머문다는 것은 낙과와 같다 뒤돌아보지 말라 아직 슬렁거림이 남았다 빈 가슴엔 비둘기 참새를 끌어안는다 그루터기는 이루어 냈다는 푸른 깃발을 들었다 이제야 나도 슬렁거림을 가라앉힌다 내년을 기약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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