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글-020 474

아프지 않았다

아프지 않았다/호당. 2020.12.3 해마다 이맘때쯤 앓던 가슴이 마음 하나 다르게 꿀꺽 삼켰더니 내 은유가 칼로 내리쳤으나 베어지지도 피 흘리지도 않았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그 병상의 환자들은 아무도 신음은 하지 않았다 그래 삶을 뛰어넘어 마음 다졌다면 운명을 받아들인 자세였으리라 10여 년을 앓던 맘 알이 주기적으로 이맘때쯤 신춘의 맘 알이다 올해도 역시나 도졌지만 맘 알이는 하지 않았다 아프지 않고 지내는 것 얼마나 고달픈가

자작글-020 2020.12.03

지워진 지문

지워진 지문/호당. 2020.12.2 평생토록 바르게 살려 닦고 애쓰고 내 힘으로 발버둥 쳤다 경쟁 사회에서 뒷짐 지는 이는 낙오된다는 것쯤은 안다 세월의 이끼는 내 주민등록증을 갉아 내린 것이 아닌가 흐릿흐릿한 낯빛으로 내 지문마저 흐릿해져 갔다 은행이나 동사무소에 주민등록을 제출받을 때마다 실물이 버젓이 있는데 보증 표가 흐리멍덩하다고 고개를 젓는다 때 묻은 옷은 세탁하면 되고 죄지은 이는 감옥에서 갱생하고 마음에 때 끼면 부처님 앞에 108배 올리거나 탑돌이 해서 회개하는데 나는 무엇으로 나를 증명할까 하나밖에 없는 지문이 어리바리하니 다시 지문을 떠야겠다 갱신 갱생 이건 새로운 기분이다

자작글-020 2020.12.02

리모컨

리모컨/호당. 2020.12.27내 조정하는 대로따르는 것은 별로 없다클릭 클릭내 손아귀에의 리모컨은 고분고분하다가장 편안한 자세로 눈꺼풀 슬쩍 스치기만 하면 내 뜻대로 변하게 해 준다말이 필요 없고 용을 쏟아내지 않아도이미 내게 종속되어 고분고분하다천당도 되고 지옥도 된다면 내 생각이다한 번도 겪지 않은 세상을 나는 누워서 감상한다자식들 머리 굵어지자 내 말이 먹혀들지 않을 때가 많지만 고분고분 해주어 내 맘이 후련하다

자작글-020 2020.12.02

12월에

12월에 /호당. 2020.12.1 마지막 달력을 바라보며 아등바등한들 세월은 잘도 지나간다 허튼 꿈일랑 잊어버리고 코로나 19로 맘 졸았지만 이만큼 왔으니 만족한다 사회적 거리가 너무 멀어지지 않게 저와 맺은 인연 가슴 품어 꼭꼭 기억하려 클릭 클릭, 업로드, 다운로드 스마트폰, 톡톡 낚싯대 던져놓고 끈질기게 기다리다 해를 넘겨도 서운해 하지 않으리 하얀 꿈 한 송이가 길운으로 살아 이어갔으면 바란다

자작글-020 2020.11.30

중고서점(헌책방)

중고서점( 헌책방)/호당. 2020.11l.30 한 번씩 지문이 찍혀 버림받은 몸 그 몸에는 진리라는 알맹이는 꼭 간직하고 있다 그렇다고 여기서 대우받을 생각은 없다 침침한 서가에서 낮잠이나 자고 행운을 꿈꾼다 행여 이혼녀쯤 된다는 착각 말라 희망은 죽지 않는다 내 몸에 밑줄 그인 페이지 낙서판이 있다 해도 진리는 변치 않아 꺼림직하게 생각한다면 여기 기웃거리지도 말라 새것이야 빳빳한 대문이 있지만 나야 너절한 책갈피다 알맹이는 같은 맛 단맛 쓴맛 모두 갖추었다 내 존재를 알아주는 자만 무척 유능자일 수 있겠다 나를 잡은 자여 처음부터 남의 지문을 인정하고 들었으니 내 본심 그대로 가지고 가라 헌 책이라 구박은 없을 거라 믿는다

자작글-020 2020.11.30

겨울바람

겨울바람 /호당. 2020.11.29 못된 시누이가 쏘아붙인다 겨울 시누이는 무조건 쌀쌀해야 하는가 아직은 몰라 더 앙칼진 진눈깨비 시누이 만나 손 시려 발 시려 싹싹 비벼댈걸 목도리 장갑까지 챙겨드렸는데 마음이 새어나간 표지 눈매가 쌀쌀하다 훈훈한 집안이라도 겨울바람은 분다 ‘시집살이’ 말만 하면 입김이 뿌옇다 항상 시누이 곁은 쌀쌀하다 내 오금 편히 펼 날 드물다 내방은 싸늘하다 남편에게 쏟아 내면 내방은 따뜻해진다 바람아 시누이야 훈훈해지라

자작글-020 2020.11.29

안동찜닭

안동찜닭 /호당. 2020.11.25안동 진미 중 진미의 명성명패 名牌야 전국에 걸려있지진골 속에 들어 진국 마실 일비닐장갑 끼고 양손으로 받드는 食法이진미 속으로 들어 풍덩 가라앉는 과정미인에는 외모에 침 흘리고음식에는 맛에 침샘이 터진다여자에게 홀리면 정신이 혼미맛에 홀리면 식판이 혼미홍등가처럼 눈을 홀리는 간판보기 좋은 떡에 오르가슴의 극치에서 즐긴다안동찜닭처럼

자작글-020 2020.11.28

후포항

후포항 /호당. 2020.11.26 겨울바람이 여기 와서 후하게 맴돌아 가슴 포근하다 코로나 너는 기세 뻗어도 우리는 갈 길은 간다 공영주차장을 보면 안다 삶이 빼곡한 것이 아니다 인생의 생기가 코로나에 기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스크는 입을 봉해도 소통해야지 어시장의 즐비한 파닥거리는 생명 그중 사근사근 고운 미인계도 좋다 손님 끄는 것도 상술 재주다 후하게 상 차려 주었다 남길 정도 포식 후한 대접 말씨는 다음 기회 연결 고리가 된다 후포는 인심이 후하다 바닷고기의 싱싱한 살점을 허겁지겁 감추고 배 두드리고 일어선다 격양가를 불러도 괜찮을까 코로나를 뚫고 겁 없이 즐긴 행동

자작글-020 2020.11.28

석류-2

석류-2 /호당. 2020.11.22 길가 노점상에서 달만큼 붉은 석류 한 알에 4,000원이란다 하기야 그 모진 햇볕 쏟아지는 링에서 피 터게 싸움박질이 격투기였지 내 펀치로 단번에 피멍에 피범벅 나는 보라는 듯 새파란 입술 들어내고 내 펀치는 연신 적중했지 해님의 울력도 점점 멀어지고 내 기력도 부치자 상대편에서 기회를 노려 큰 펀치로 나를 타격했지만 치욕의 멍 붉은 덩이는 솟았지 아니야 내 영광의 덩이가 된 것이다 내 링에서 나를 안고 사랑의 입맞춤이라도 해준다면 내 진심을 확 쏟아내어 보여드리고 싶어 달콤하고 알알이 쏟는 보석 같은 내 영혼을 내 영광의 징표를, 내 영광의 징표를,

자작글-020 2020.11.22

시외버스 정류장

시외버스 정류장/호당. 2020.11.21 10시가 넘었다 깊은 잠에 빠졌는지 아니 외면하는지 적적하다 깊은 밤 같다 휘황찬란하던 시각표는 보이지 않는다 창구에 A4용지에 띄엄띄엄 박힌 시각표 코로나의 위력이 대단하군 창구 아가씨 코로나 때문에 확 줄였어요 폭탄 맞은 뒤끝은 쓸쓸할 뿐 왁짜법썩하든 대합실과 가게는 문 닫고 겨우 두셋 손님 어리둥절한 듯 시각표를 쳐다보다 창구로 내뱉는다 사람 냄새가 그립다 빈사 상태인 시외버스 정류장

자작글-020 2020.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