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글-020 474

겨울 산

겨울 산/호당. 2020.11.7 이제야 산의 본성을 드러냈다 봄을 거쳐 여름을 건너는 동안 욕망을 허겁지겁 끌어모아 푸르게 살찐 것은 허욕의 상징이다 천둥과 번갯불이 벼락이 된다는데 이것쯤 두려움 없이 거침없이 약지를 누르고 제 체위만 키우려했다 태풍에 폭우에 끄떡없이 버티고 조무래기 넘어지고 뿌리 뽑혀 사라지고 어쩔 수 없이 나도 버텨야 여분 손쓸 여지없었다 이제 제 몸 추스르고 모든 욕망을 벗어던지고 원점으로 돌아간다 산이 훤히 드러내 보인다 늦었지만 본성으로 돌아가 겨울 동안 깊이 자성의 눈을 감는다

자작글-020 2020.11.07

매미

매미/호당/ 2020.11.6 매미는 트로트 가수다 굴밤나무 든 은사시나무든 임자 있든 없든 찰싹 붙으면 제 영역이 된다 자기 목소리로 노래 불러 듣는 이 있든 없든 좋아하든 말던 상관할 게 없다는 듯 제 신명을 부린다 여름 내내 놀고 노래하고 땀 흘리는 개미나 사람 개의치 않는다 그는 세상을 바로 알고 있는지 없는지 숲 동네에서 추방당하지 않는 것은 숲을 망가뜨리는 일 없이 듣기 좋은 노래로 즐거움만 주기 때문 가수는 청중이 많을수록 울대는 하늘 치솟으려 하는데 매미 근성을 탐내지 말라 한철은 잘 지내겠지만 겨울은 어떻게 하려나 개미는 눈에 띄지 않느냐

자작글-020 2020.11.06

봄 정원

봄 정원 /호당.2020.11.5 정부 지원금이 여기 정원에 내려앉아 에헴 당당히 정부 내탕금으로 이룬 거야 사철 웃어 줄 거라 꽃이 반길 거라 믿는 골목 지금 가을이 소복소복 모아 점점이 노랗게 반긴다 슬쩍 옆구리 스치면 초라한 낯빛이 정부라는 듯 으슥하지만 좀 얄팍하다 연못도 만들고 등산로도 만들고 샛길도 포장하고 눈에 띄지 않는 곳까지 보살피면 좋겠다 이 시각 배곯고 얼음장 구들에 쪼그리는 독거노인은 없는가 골고루 물 흘려 미치지 못한 곳 없도록 물이 가득 고이도록 봄 정원이 더 풍성하게 태어났으면 더 향기 뿌렸으면

자작글-020 2020.11.06

함지노인 복지관 재개관

함지 복지관 재개관/호당/ 2020.11.2 9개월을 휴관했다 11월 첫 주부터 재개관이 반갑다 나는 9년간 자음 모음을 뿌려주었다 긴 휴관에도 정이 식지 않았나보다 반가운 얼굴 지린내 속에 입은 봉해 (마스크) 놓아도 눈빛 몸짓으로 정을 나누었다 그간에 지각은 요동쳤는가 보다 이 좌석을 차지 못한 이의 안타까움 낱말 매달기로부터 시작했다 그간 밑 빠진 독에도 한 귀퉁이에 고인 낱자가 툭툭 튀어나와 제 음가를 펼쳐냈다 열의만큼 파랗게 싹 피웠다 가는 세월은 보내고 정만 움켜잡자 지린내가 일상이 되어 동화되었다

자작글-020 2020.11.06

첫추위

첫추위 / 호당. 2020.11.5 낙엽은 알바생이 다급히 살포한 바람 부는 데로 수북이 쌓인 전단이다 한파가 내린 새벽 5시는 모닥불에 몸을 맡긴 일용직이 덜덜 떠는 맘이다 앙상한 가로수 줄기 사이로 비친 하늘이 새파란 칼날로 맥없는 구름을 재단한다 깃털 바싹 세워 종종걸음으로 다방 문을 따는 중년 레이디 오늘 매출을 걱정한다 겨울을 꼿꼿이 세운 날을 지난 첫추위 모두 움츠리며 두 손 깊숙이 찌른 호주머니 코로나 감기에 벌벌 떠는 첫추위의 위상들 TBODY>

자작글-020 2020.11.05

이태원 길

이태원 길/호당. 2020.11.4 대구 북구 문화예술의 거리로 태어났다 작가의 혼이 발효되어 흠뻑 취할 수 있는 불쏘시개를 많이 지펴야 하겠다 아마추어 예술가도 좋아 발효된 혼을 담아 제2의 싹 피워 올렸으면 한다 수려한 문장이 줄줄이 흘러내려 그 문장을 적신 자의 가슴에 생생히 돋는 새싹을 피워 올렸으면 좋겠다 아직 초창기 이 거리가 문학 촉진제가 될 수 있는 풍성한 밑거름이 진하게 쌓였으면 진기한 꽃망울이 터질 날을 기대한다

자작글-020 2020.11.04

맘 졸인다

맘은 항상 졸인다/호당. 2020.11.4 당신 이만큼 같이 흘렸으니 마음 턱 놓고 흐르면 안 될까 하늘 먹구름 조각조각 나누기에 얼마나 고통스럽고 안쓰러웠겠니 세 조각으로 흩어져 저들끼리 주고받고 살찌우려 노력하고 있어 삼시 세끼 밥상 차리고 더 넓히려 저마다 밧줄 움켜쥐고 당기고 있어 그만 마음 놓으시라고 겨울 밖은 추워요 남향 창에서 햇볕이 마음 어루만지고 있어 마음 졸이면 된장찌개 넘쳐요 느긋한 맘으로 지은 밥이 부들부들합니다

자작글-020 2020.11.04

인정

인정 /호당 2020.11.3 함지 노인복지관을 9개월 휴관했다 11월 첫 주부터 문을 열었으니 반갑다 나는 9년 동안 자음 모음을 뿌려주었다 긴 휴관에도 정이 식지 않았나보다 반가운 얼굴 지린내 속에 입은 봉해 (마스크) 놓아도 눈빛 몸짓으로 정을 나누었다 그간 지각은 요동쳤는가보다 이 좌석을 차지 못한 이의 안타까움 낱말 매달기로부터 시작했다 밑 빠진 독에도 한 귀퉁이에 고인 낱자가 툭툭 튀어나와 제 음가를 펼쳐냈다 열의만큼 파랗게 싹 피웠다 가는 세월은 보내고 정 만큼은 움켜쥐자 지린내가 일상이 되어 동화되었다

자작글-020 2020.11.03

무섬마을

무섬마을/호당. 2020.11.2 잔뿌리 더듬어 찾아가면 원뿌리 있을 무섬마을 우선 마음 가다듬어 외나무다리 건너다 내려 보면 아득한 풍경이 내성천에 어리다 외나무다리 굽이굽이 휘돌아 중간에서 마주치라치면 어르신 안녕하신껴 그 말씨가 맑은 물에 녹아 피라미 떼 뻐끔뻐끔 무섬마을로 꼬리 치면 보금자리 틀었는지 돌아오지 않아 맑은 물 맑은 모래처럼 마을도 맑고 마음도 맑아 섬은 없고 원뿌리 순이 고색창연하다

자작글-020 2020.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