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글-021 496

열대야

열대야 /호당/2021.7.21 종일 햇볕에 벌섰다 집에 돌아오면 반길 아내가 있고 새끼가 있다 웬일 인가 모두 축 늘어져 흐물흐물한 것 같다 거실 창문 열고 더운 맘 내보내려 했지만 한사코 거부의 신호 불덩이 같은 마음 한 뭉치 그래그래 햇볕은 숨었지만 그가 남긴 꼬리에 열기는 식지 않았다 선풍기는 더운 바람을 헉헉 토하고 에어컨은 약하지만 한 줄기 시원한 바람 돌려라 켜라 열화부터 몰아 내아지 쏴쏴 스콜 한줄기 덮어쓰고 들렸다가 나오고 금방 더위에 휘감긴다 이 밤 달구어 놓았으니 언제 식을지 내 밤잠을 더위에 손잡을 수밖에 더위와 엎치락뒤치락 새벽에서야 한판 앞다리 걸기로 눌렸다 짧은 잠 일 나가야 해 오늘 더위에 실려 타협 잘해야지 내 몸에서 진이 빠져나간다

자작글-021 2021.07.21

안동땅 명륜동

안동땅 명륜동 /호당/ 2021.7.19 한창 먹어 치울 나이 우리는 밤마다 밤꽃처럼 포갰지 자취는 엄격한 당번제 그래서 고향을 더 진하게 감겼지 밤꽃 지면서 뿔뿔이 흩어져 버렸지 어디서 밤꽃 같은 새끼 키웠겠지 긴긴 겨울밤 전등은 밤 10시 정전 깜박거리는 촛불 호호 김 서림 부지런히 책장 넘기고 건반 맡으려 새벽을 지키고 그 덕으로 열 손가락 부드러워졌지 잔설이 녹아내리는 꿈같은 학창 시절 아직도 명륜동을 새겨 패용하고 있을까

자작글-021 2021.07.20

곡선의 미

곡선의 미/호당/2021.7.18 곡선이 직선보다 아름답다 했다 부석사 대웅전의 기왓골을 처녀의 몸매를 보면 곡선이 아름다움을 안다 그간 쌓은 일들이 강직할 뿐 조금도 여유 없다 돋보기로 만들려 유리알을 갈아 문지르고 가운데만 약간 볼록하도록 얇은 것이 얼마나 예리했을까 돋보기로 물고기를 바라본다 크게 눈뜨고 유연하게 헤엄친다 연인을 바라보니 선이 부드럽게 흘러 선녀 같다 내가 너무 직선으로 달렸다 마음만 조금 굽으면 이렇게 편할 수가 내 갈비뼈 사이 상처에서 파란 싹이 돋는다 늙어서야 깨닫는 곡선의 미 햇볕은 직선으로 쬐는 것을 나는 직선을 곡선으로 받으려 장막과 그늘을 만든다

자작글-021 2021.07.18

노인

노인/호당/2021.7.18 좌표에 대한 인식이 엷어지자 그만 허둥지둥 찾아 헤맬 나이 그의 낯바닥은 이랑을 만들고 검버섯을 키워내고 있다 검버섯 농장은 소득 없는 자연으로 돌아갈 소명인걸 노령으로 아홉 구멍은 열려 새어 나간다 있다,없다. 여기.저기. 물무당처럼 맴돌지 않으면 된다 과거는 흘러갔고 미래는 생각 말고 현지 이 시각을 챙기는 것이 내 행복이다 노을이 불타고 있다 언제 꺼질지 모른다 내 몸에서 화근 내가 난다

자작글-021 2021.07.18

적막이 흐르는 세상

적막이 흐르는 세상/호당/ 2021.7.17 농경시대 마소에 부리망 씌웠다지 이 시대 사람의 입마개는 열심히 살려 발버둥 치든지 빈둥빈둥 놀던지 필수품이 됐다 숲은 그늘을 만들어 때로는 적막과 동침한다 그 밑을 걷는 나 밀림 속의 침묵을 입마개가 대신했다 8차선 학정로 양 갓 차선엔 트럭은 질서 있게 누워 주말 적막에서 쉰다 코로나 너만 없었더라면 입마개 벗어버리고 창문도 입도 활짝 열 텐데 이 시각 적막이 흐르는 세상에 실려 입을 봉창하고 있다

자작글-021 2021.07.17

무심증

무심증자/호당/2021.7.16 아편 중독자는 병원 치료가 필수다 태양에 대한 무심함은 무심증 無心症 환자 아예 무심 중독자이면서 병원은 안 가도 된다 태양에 내다 말리려 빨래를 널거나 옷을 훌훌 벗어 모랫바닥에 눕는 짓은 태양을 경배하려는 행동이다 석 달 열흘 긴 장마를 맞아보면 안다 태양에 무심 중독자는 아우성 지르고 경배하려 절을 올릴 것이다 풍요의 열차에 승차하고부터 태양에 대한 무심 중독자는 더욱 늘어 자칫 자연을 소홀히 하다가는 자기를 잃을 수 있겠다

자작글-021 2021.07.17

겨울 자작나무

겨울 자작나무/호당/2021.7.16 훌쩍 떠나버린 사랑 되돌아올 것이라 믿는다 온 살갗으로 그리다 야위어졌다 설상가상으로 찬바람 불고 휘몰아치는 눈발 온몸을 콕콕 찔러대 가슴 아리다 네가 보낸 징표였다면 가망 있어 보인다 어려워도 즐기는 것이 사랑이다 저 멀리 남쪽에서 네 입김이 가냘프게 닿는다 그럴수록 그 방향으로 돌린다 살을 꼬집어 정신 가다듬어 견디리라 한평생 골짜기를 지키며 오직 너만 그린다 골짜기를 밀어 올리는 순한 바람 네가 돌아온다는 징조인가보다

자작글-021 2021.07.16

세한도

세한도/호당 2021.7.16 초반에는 떫고 가당찮음을 안다 그래서 한참 아래 계단에서 꾸물거림에 연민의 정을 보낸 것도 안다 나와 당신의 거리는 멀다 따라가다 가시밭길 만나 찔려 피 흘릴지라도 더 모진 마음 다짐으로 경전을 뒤지는 것이다 대나무가 한겨울 추위에 변질하더냐 뼈를 깎는 심정으로 시의 속을 천착하는 거다 그럴수록 내 핏속에서 푸른 힘이 치솟는다 앞서간 자의 발자취를 밟아 내 보폭을 넓히겠다 그들과 바싹 붙어 시맥을 받아 들면 한발 앞선 시심으로 익혀 큰 강물로 흘려보내리라 겨울 얼음장을 깨뜨려 물속에 잠기는 심정으로 내 안의 시혼을 끌어내어 창창하고 푸른 세한도 정신을 그려낼 수 있는 일만 내 일이다.

자작글-021 2021.07.16

늦깎이

늦깎이/호당/ 2021.7.15 허기진 뱃심으로 노 젓다가 쓰러지기 한두 번 아니다 고기를 잡아야 해 어구를 장만하는 게 더 급해 그까짓 ㄱ,ㄴ,ㅏ,ㅑ,는 배부른 자의 몫 노 젓고 호미 괭이 들고 山田 水田 가꾸는 일이 내 일인걸 손톱 발톱 닳은 보람 만선이 풍년이 들었다 배 두드리자 어느덧 훌쩍 떠난 세월의 태질이 가혹하다 눈도 침침하려니와 보고도 모를 ㄱ,ㄴ,ㅏ,ㅑ, 뭉치 깎고 갈아 익혀보자고 꼭 감은 눈을 틔워 보자고 늦깎이 연필심을 깎고 또 깎고 마른 눈이 톡톡 틔워 봉오리가 부푼다

자작글-021 2021.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