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글-021 496

일요일

일요일/호당/2021.7.25 느긋한 일요일을 맞아 햇살이 꽁무니를 찌를 때까지 그제야 하품하며 푸시시 일어난다 항상 쫓기듯 일하다가 한 번쯤 느긋한 맛을 봐야 생기도 되찾을 수 있다 무위고에 단련된 나 일요일이라고 변고는 없다 아리따운 아가씨 치맛자락 붙들고 노닥거리는 재미는 무위고를 싹 매워진다 은유의 껍질을 벗기고 들어가면 상징이란 병정이 떡 버텨 막아선다 나 이런 사람이요 큰소리 뻥치면 슬며시 비켜준다 코로나 정국에서 몇 가지 통과의례를 치르고 아가씨 방으로 가면 일제히 깔깔거리며 반긴다 슬쩍슬쩍 눈 맞추고 손으로 스치기만 해도 나를 안아달라고 앙탈한다 좋아 와락 끌어안고 책장 넘기듯 입술 넘기면 그제야 내 속에서 정기가 솟는다 바로 이 재미로 이곳은 나의 친구가 모인 곳 책의 나라 꽃밭에서 물주..

자작글-021 2021.07.25

광기의 바람

광기의 바람/호당/2021.7.25 그이와 연애한 지 7년 달콤한 것도 쓴 것도 맛보았지만 속속 마지막까지 털어 주지는 않았다 오늘의 예감이 급하게 돌아간다 획 몰아치는 바람이 대뜸 젖가슴과 배를 훑고 명당까지 도달한다 7년을 노리던 바람 오늘은 사자의 포효 같은 기세로 달려든다 안돼 안돼 딱 하나만 줄 수 없어 오늘은 미친바람으로 변했는가보다 이것 어떻게 마음 돌려놓지 잠시 그 자리 피하는 사이 그는 허방에서 허우적거린다 햇볕이 짙게 타이르자 얌전해졌다 사랑한다는 말 끝까지 책임질 말이다 마지막 관문을 든든히 지키는 것이 사랑이다 광기의 바람은 온순해졌다

자작글-021 2021.07.25

빨리빨리는 우리 습성

빨리 빨리는 우리 습성/호당/ 2021.7.24 우리 민족 습성을 ‘빨리빨리’로 요약한다 음식 주문하고 못 참아 다그친다 “예”“나가요” 산 등에서부터 소나기 퍼부어 도망치듯 한다 뭐 그렇게 급한가 교통사고는 빨리빨리 이건 범칙이야 우리 아파트 옆 왕복 10차 도로를 시속 50으로 운행 하란다 이런 식으로 한 달 실시 결과 전국 교통사고 00 % 줄었단다 0% 원한다면 굼벵이 속도를 표준 삼아야 하리 아예 속도 100을 넘지 않은 신차를 출고하라 고속도로만 달려도 시속 100 넘으면 딱지야 빨리빨리 끓는 냄비를 나무랄 생각 말고 내 머리에 박힌 속도계를 수정해야겠다

자작글-021 2021.07.24

강물이 우리를 갈라 놓았다

강물이 우리를 갈라놓았다/호당/2021.7.24 열렬한 사랑은 용솟음칠 듯 부글부글 끓고 처음 보는 사람은 비둘기 한 쌍 보기 좋다 했다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나 싱싱한 계발 선인장은 꽃봉오리 맺으려 탁탁 터지는 소리 내고 내 집과 네 집 사이 강물로 경계선 서로 넘지 않겠다는 불문율이 대대로 이어왔단 몰랐지 우리는 이 강물을 건널 수 없겠니 아니 물길을 돌릴 수 없겠니 완강히 반대하는 부모님 큰 벽에 부딪힌 한 쌍의 비둘기가 신음한다 몇 대조부터 내려온 가로놓인 강물을 우리 대에서 봉합할 수 없겠니 뒤돌아가는 네 모습 차마 필름에 담아 둘 수 없어 선대의 고통이 후대까지 이어지다니 시간이 멈춘 시계를 태엽을 빡빡 감았다

자작글-021 2021.07.24

들어내 보이고 싶은 마음

들어내 보이고 싶은 마음/호당/2021.7.24 해수욕장도 아닌 삼복 지간 대로에 행인은 헉헉 가슴까지 차오르는 열기 열여섯 일곱쯤 된 아가씨 소나기에 흠뻑 젖은 듯한 찰싹 붙은 옷매무새 나를 보란 듯 활보했다 한 번쯤 눈 돌릴 눈매들 궁둥이 골이 선명하고 각 선이 미끈하다 남성들이 노리고 침 흘리는 궁전 용마람*이 또렷하다 풍성한 유방이 미래의 며느릿감으로 결격이 없다고요 살아있는 나상이 걷는다 곡선이 얼마나 매력적이냐 가장 매력을 드러내 보이고 싶은 나이 꽃 시들면 이런 짓 하고 싶어도 안 돼 수벌들이 아무도 지렛대를 세우지 않아 멋진 풍경이 지나간다 *초가의 지붕마루에 덮는 ㅅ 자형으로 엮는 이엉

자작글-021 2021.07.24

바다는 살았다

바다는 살아있다/호당/ 2021.7.24 비록 내 귀는 흐릿한 밤 같아도 이런 소리는 번쩍 뜨인다 철썩철썩 파도가 절벽을 부딪는 소리 아,아, 재미있어 흥,흥, 더 세차게 부딪쳐라 파도가 몰고 온 비릿한 향기 이건 바다가 쏟아낸 밤꽃 향기야 이런 향기 없는 바다는 죽은 바다 철썩철썩 비릿한 밤꽃 향기 내 허벅지를 간질이는 물고기의 지느러미 바다는 지금 수태 중 바다는 살아있다

자작글-021 2021.07.24

술 /호당/2021.7.23 하늘이 내린 명 약주를 즐기는 목구멍들 人事不省 취하다가 술독을 깬다 주거니 받거니 알맞게 발효되면 고려청자기가 빛난다 내 목구멍에 가시 돋았는지 술이 걸려 넘어가지 않아 어쩌다 한 모금 넘어간 사실을 붉게 고백하고 만다 약술로 술술 치맛자락으로 날리면 수작이 술술 풀려 맨입보다 앞서간다 아가씨 꼬리치고 옥돌 잔에 취한 자가 밀밭 근처만 가도 정신 못 차린 목구멍보다 먼저 날개 단다

자작글-021 2021.07.23

붉은 스탠드

붉은 스탠드/호당/ 21021.7.22 신혼을 밝히는 스탠드를 내가 작동하면 아늑한 분위기에서 붉은 침대는 춤추었다. 깜박깜박할 나이일수록 보폭은 다르고 벌어진 거리에 찍힌 발자국의 붉은 앙금도 달랐다 활엽수는 발가벗어 오돌오돌 떨고 침엽수는 끄떡없다 거리가 멀면 인정할 수밖에 촉광이 희미한 스탠드를 호롱불 심지 돋우듯 겨우 밝히고는 그만 코를 곤다 잿불을 파헤치지 않으면 내면엔 은근한 불잉걸은 살아있다 굳이 스탠드를 켜려 애쓰지 않아도 우리 사랑은 내면에서 활활 빛내고 있다.

자작글-021 2021.07.22

건조주의보

건조주의보/호당/2021.7.22 감정이 마르고 영혼 없는 시는 대지를 건조하는 데 일조하고 말걸 은유를 품고 감정에 점액이 있는 내 바싹 마른 시는 백내장 수술하고 점액이 흘러 부드러운 시가 쓰인다 눈물이 마른 자는 감정 메마른 자 서로 내통하면 잘 어울릴 걸 그래 봐야 은유와 상징이 없는 바삭바삭한 시만 생산 하리리 새벽이슬이나 받아 넣고 여분을 눈물 흘리면 한층 부드러운 시상이 물안개처럼 피어오르면 그날 일기예보엔 건조주의보는 못 들을 것이다 시작은 풍부한 눈물 감정이 샘솟으면 건조한 시상은 없을 것이다

자작글-021 2021.07.22

논산훈련소의 추억

논산훈련소의 추억/호당/2021.7.22 늦게 입대해 나보다 3,4,5세 아랫것들 한 내무반에서 너 나 나이 자랑하겠나 뭐 조금만 불리하면 사정없이 달려든다 순진한 촌뜨기 뭐 대항할 말조차 찾지 못하고 비행기 태워 돈 빌려 달랄 때엔 딱한 사정 덜컥 주고 갚으라는 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전반기 훈련 끝나고 뿔뿔이 헤어질 때 주소 적고 틀림없이 반환한다는 소리 귀 넘어 듣고 영변 장에 모아놓고 상의 홀딱 벗겨 사물 옷은 몽땅 뺏겼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병장 상병이 되면 내무반에 침입하고 신병의 새 군화를 강제로 바꿔치기해도 말 못 하는 엉터리시대 후반기 교육은 발발 떨어 훈련을 마쳤다 그래도 젊은 피가 끓어 견뎠으니 지금 생각하면 꿈같다 어디 지금 군대가 그런 대접 받았다면 당장 인권이 어떻고 부식..

자작글-021 2021.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