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포구 얼어붙은 포구 호 당 2009.8.28 귓바퀴가 시리다 쪼끄만 포구에 들렀다 바닷바람이 낮게 깔려 사정없이 다그친다 포구의 집들은 벌벌 떨며 꼭꼭 잠근 채 침묵 중이다 분교에 걸린 태극기는 힘차게 펄럭거리는데 운동장엔 먼지만 날고 뭍으로 올라오지 못한 어선은 저들끼리 밀치고 당기고 올라온 것들은.. 자작글-09 2009.08.28
역경을 탓하지 말라 역경만 탓하지 말라 호 당 2009.8.28 이기려 하지 않고 맥없이 모였다 흩어지는 구름 같은 청춘으로 흘리지 말라 하필 박주가리 한 포기 가시덤불 밑에 자리 잡고 자란다고 탓만 하지 말라 가시를 헤치고 어깨를 짚고 정수리에 꽃피고 열매 맺는다 설화는 눈을 덮어쓰고 꽃 피우고 동토에서도 풀꽃을 피.. 자작글-09 2009.08.28
복날 복날 호 당 2009.8.27 삼베옷 입고 볏논일 하던 내가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살갗과 밀착된 복날 가슴 달아 이열치열로 다스리려 가게에 들렀다 실컷 두들겨 맞은 살점 우려낸 국물에 소금으로 간 맞추어 마시면 목구멍으로 넘는 그 향과 맛의 시원함이 어디 목욕탕 속에 든 것과 비교하랴 쫄깃한 살점에 .. 자작글-09 2009.08.27
연가-덕곡에게 바침- 연가 -덕곡에 바침- 호 당 2009.8.27 한 알의 밀알이 안동 땅에 심어져서 한그루로 같이 자라 영글어 갈수록 힐끔거리며 연모한 지 3년 야속하게 흩어져 버렸지 그리고 그려보았지만 제 갈 길 달라 제 몫 다하여 새 씨앗 뿌리고 세월 흘린 반세기 훌쩍 넘겨 안쓰러워 이제야 백발 되어 당신 만났어! 새파란 .. 자작글-09 2009.08.26
태안반도 채석강 아름다운 인생을 위하여 태안반도 채석강 호 당 2009.8.27 누가 여기 시루떡을 괴었을까 켜켜이 쌓아 올린 시루떡이 바다를 바라보고 손짓하네 누가 여기 한을 쌓았나 시커멓게 타버린 어머님의 가슴을 켜켜이 쌓아두고 바닷바람 불러들여 녹이려 하네 누가 여기 책을 쌓았나 켜켜이 쌓아 둔 지식층이 .. 자작글-09 2009.08.26
부적 하나 부적 하나 호 당 2009.8.26 아홉수를 잘 넘겨야 돼요 올해는 삼재가 든 해래요 딸애가 부적을 붙여 왔다 꼭 몸에 지녀야 한다는 당부도 덧붙이고 성의를 봐서 버릴 수 없어 지갑에 넣었다 내 낙관 같으면서도 알 수 없는 글자 같은 것 꼬불꼬불한 골목길 같은 것에 붉은 가루 덮어씌워 도무지 알 수 없는 .. 자작글-09 2009.08.26
욕심 한 점 욕심 한 점 호 당 2009.8.25 아침을 걷는 발걸음이 동천교까지 와 그 아래 팔거천에 아침밥을 찾아 나선 붕어 한 마리를 보고 있다 엄청 큰 놈에 엉큼한 생각부터 저놈 한 마리 낚아 고와 먹었으면...... 나는 무신론자다 기껏 거기까지만 미친다 신자는 마음이 하얄 걸 생명의 약동에 찬양할걸 내 손바닥보.. 자작글-09 2009.08.25
혼돈 혼돈 호 당 2009.8.6 희미한 새벽이 사라질 무렵이면 버릇처럼 된 달팽이는 더듬이를 새우고 우주를 꿈꿉니다 오늘은 더듬이가 한여름 낮 호박잎처럼 되었습니다 아직 잠에 덜 깬 것도 아니고요. 빳빳한 더듬이는 우주와 지구의 소리를 받아들여 올곧은 달팽이로 살아왔는데 그만 맥없이 쓰러지고 말았.. 자작글-09 2009.08.24
하지정맥은 내 훉장 하지 정맥은 내 훈장 호 당 2009.8.24 내 인생의 강줄기가 여기 고스란히 모였다 왼쪽 정강이 뒤쪽으로 강줄기가 많은 지류를 거느리고 낙동강물처럼 흐른다 항상 순조롭게 흐르지 못하고 울퉁불퉁한 강 흐름에 깊은 소를 만나거나 절벽을 만나면 곤두박질 치거나 박치기하다가 시퍼런 혹 몇 개쯤은 생.. 자작글-09 2009.08.23
건설의 현장 건설의 현장 호 당 2009.7.24 울창한 푸른 가슴에 날짐승 보금자리 내 주고 산짐승을 끌어안고 함께하거늘 언제나 평화를 누린다는 내게 어느 날 갑자기 굴착기의 손바닥이 끊고 자르기 시작했다 내 몸 곪고 상처 났다면 수술해도 좋으련만 멀쩡한 나를 살점 도려낸다니 겁에 질려 달아난 산짐승들 어디.. 자작글-09 2009.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