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하는 사람들 수화하는 사람들 호 당 2009.3.6 중앙로 늦은 시각 귀가시간의 버스정거장은 귀소의 본능의 집합장이다 개중에는 눈의 시선이 버스 오는 쪽이 더 많다 그때 말문 저버린 눈동자 10개는 저들끼리 반짝거렸다 소리 없는 가야금 12줄이 떨고 있었다 격렬하게 가냘프게 떨리는 가야금 줄에 마음을 읽어내는 .. 자작글-09 2009.03.06
그날 밤 그날 밤 호 당 2009.3.3 복사꽃 활짝 핀 밤 오늘은 무엇인가 결딴날 것 같다 철조망 24칸을 친 포도원을 지켜왔지만 짐 벗을 날이 온 것이다 그이는 소포를 풀면서 벙글거리고 내 향수뚜껑을 억지로 열어버렸을 때 드럼이 울리고 가슴을 치는 우뢰는 진정하지 않았다 솔밭 사이를 헤매는 그이의 심호흡 소.. 자작글-09 2009.03.03
가족 가족 호 당 2009.2.28 핵분열 해서 흩어 있어도 마음은 한 끄나풀에 묶여 그물보다 더 질기다 훌쩍 걷어 올리면 한 곳에 바글거리는 물고기 같다 잠시 큰 먹거리 두고 그물 조이면 모였다가 다시 느슨히 풀어헤쳐 놓으면 작은 매듭으로 흩어져 나간다 넓은 바다를 헤엄쳐도 언제나 실핏줄로 얽혀 있어 사.. 자작글-09 2009.03.02
시심으로 물들려는 영혼 시심으로 물들려는 영혼 호당 2009.2.27 겨우내 긴장했던 대지는 느슨해지고 나목도 기지개 켜려는데 시로 물들려는 영혼은 아직도 꽁꽁 한가 한줌의 시심 풀어 헤치려 서둘면 서둘수록 수렁으로 빨려드는 허망 사유의 골짜기는 굳어만 있는가 시심의 실타래 풀어 헤치지 못하는 안타까운 영혼아 시심.. 자작글-09 2009.02.27
포도 포도 호 당 2009.2.28 젖가슴 포동포동한 처녀가 매달려 8월의 마지막 햇볕을 쬐고 있었습니다 그녀에 손 내밀어 더듬고 싶은 충동을 보고는 한사코 포도원을 지키려 했었습니다 환한 햇살 연달아 내리비췄습니다 결국엔 포도원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단꿈에 젖은 밤은 짧았습니다 그 사이 포도는 더욱 .. 자작글-09 2009.02.27
봄 냉이 봄 냉이 호 당 2009.2.25 늦가을에 조그마한 구멍가게 같은 사업체를 싹 틔웠다 추운 겨울을 이기는 냉이처럼 시린 고통을 참아가며 뿌리 내렸다 눈 덮여 누를지라도 고개 들고 몸을 낮추고 언 이파리 녹여가며 더 깊게 언 땅을 헤치고 불모지를 개척했다 식탁에 오른 상큼한 봄 향기 풍기는 냉이처럼 명.. 자작글-09 2009.02.25
이력서를 내고 - 이력서를 내고 호 당 2009.2.22 차라리 된바람이면 떨고나 있지 바다 건너온 샛바람에 풍향계는 방향을 제대로 못 가누고 풍속계만 맹렬히 돌고 있었다 수없이 날려 보낸 화살이 과녁을 단 한 군데라도 적중한다면 풍속계보다 더 힘차게 돌아갈 것이라 다짐하면서 오늘도 곳곳에 전단을 큰 대문 편지함.. 자작글-09 2009.02.22
칼국수의 추억 칼국수의 추억 호 당 2009.2.19 밀가루를 반죽하고 홍두깨로 미는 노파 옆에서 지켜보았더니 어릴 적 추억이 더듬더듬 펼쳐 나왔다 언제나 가뭄을 면치 못하던 그 시절 모처럼 비구름 한 뭉치로 여덟 골짜기 논바닥을 빗방울로 적시려 했다 어머니는 홍두깨로 더 넓게 더 얇게 펼친 다음 켜켜이 조각난 .. 자작글-09 2009.02.20
약속 ◈ 약속 ◈ 호 당 2009.2.18 그 역사 앞엔 한 그루의 소나무는 서 있어야 했다 푸른 숨 헐떡이며 실눈 치켜뜨고 있어야 했다 금방이라도 눈웃음 짓는 한 떨기 장미꽃이 필 것 같은데 다른 꽃만 피고 있었다 기다리다 지친 노을이 사라진 그 자리에 소나무는 낙엽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자작글-09 2009.02.18
찔레순을 꺾지 않으면 : 찔레 순을 꺾지 않으면 호 당 2009.2.16 삼엄한 독침 세우고 가장 은밀한 곳에서부터 길러 낸 그를 입맞춤할 때의 상큼한 향이여 뭇 햇살이 너를 탐하고파 가시 비켜 햇살 한줄기 속살까지 환히 비추는데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버틴다면야 부질없는 세월만 흘려 어쩔 수 없이 불임의 석녀로 또다.. 자작글-09 2009.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