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글-021 496

느릅나무 문장

느릅나무 문장 /호당. 2021.5.27 우리 아파트 어린이 놀이터에 느릅나무 몇 그루가 세세한 문장을 흘리며 하늘거린다 눈부시도록 햇볕 내리쬔 날 느릅나무가 흘린 시어에 마디마디 새 움 틔워 희망차다 그 밑에서 내가 흘린 구절은 맥 못 추는데 그걸 조무래기들이 주워들고 희쭉 희쭉 깔깔거리니 내 문장이 비틀거린다 그래그래 맥도 없고 뿌리도 없는 시어를 뿌리고 다니니 이런 수모는 달게 받아야 해 시련이다 칼날 같은 번득이는 시어로 누구나 회자하여 즐길 날 오리라 느릅나무 시어처럼 빳빳이 고개 처들 날 오리라

자작글-021 2021.05.28

제맘만 닦으려는 자

제맘만 닦으려는 자 /호당. 2021.5.26 그 시각 지천으로 깔린 식당에 입술들이 무논의 개구리처럼 몰려오고 햇볕도 늙은 노송에 지긋이 응원하는데 흡인력은 허겁지겁 맛으로 결론 내고 마지막 커피로 마무리한다 제 핏줄이 자력으로 잘 흐름을 두고 볼 수 없다는 마음 하나 닦으려 보험으로 동전으로 다스린다고 듣는 맘엔 뚜렷한 색깔이 구분 짓네 이 시각만큼 소중함을 키우는 것보다 더 좋은 시간이 기다리는지 일어서자 재촉하는 제 맘만 닦으려 하네 마지막 골목길에 붉은 알갱이 깔리는 길로 닦고 갈 수 없겠나

자작글-021 2021.05.27

가르침의 희망을

가르침의 희망을/호당. 2021.5.25 퇴임 후 10년을 분필 들고 가나다라마바시아 외치며 눈 트지 않은 늙은 나무 안고 뱅뱅 돌다가 돌아온다 늙은 주름살들 배움을 놓쳐 연필을 든 것만 손뼉 쳐 줘야지 흐릿한 눈동자에 눈 틔우려 무딘 연필심에 *촉을 간다 어둠의 길을 밝히려 등심을 높이자 연필 잡은 손의 울림이 화답한다 나의 보람이 점점 붉어졌다 진눈깨비 막고 회오리바람 막아 아기처럼 겨우 홀로 서다 내려앉고 반복하다 한 발짝 걸었다 내 희망은 잠시 그만 앞으로 걷지 않으려 주저앉고 말았다 내 희망이 당신의 희망인데 내 가슴에 못 박는 아픔이다 조금 더 나아가면 더 밝을 텐데 눈 트고 잎 필 텐데 *촉(​鏃)은 긴 물건 끝에 박힌 뾰족한 것을 가리킨다.

자작글-021 2021.05.26

직통은 없다

직통은 없다.호당. 2021.5.24 기업체 장이라든가 기관장엔 밥통과 연관돼있다 직통에는 보호막을 무시하려는 행동은 무지다 버스 운전석엔 보호벽이 있다 대뜸 직원에게 장을 만나겠다 했다 뾰족한 꼬챙이로 천착하려 든다 결국 네 흰 뿌리를 들어내고 허락받았다 나도 그런 대접을 받았다 문밖을 활보하니 가맣게 잊은 것이다 문밖 인이 직통하려는 짓은 문외한이다

자작글-021 2021.05.25

산 /호당. 2021.5.23 가까이 있는 산은 친구이면서 그가 소심할 때가 있다 한해 한 번씩 자기 본대로 훤히 드러내고 참선하는 듯 할 때가 있다 참선할수록 차가운 몸으로 자기 생각도 날카롭게 가감 없이 보인다 마치 x선을 통과한 골격처럼 적나라하게 들어 보인다 누가 저 산을 한 계절 욕심부리고 막 배를 불리다가 알록달록한 괴질에 걸려 헤어나려 훌훌 털어낸다고 말한다 겨울 산은 칼날 같은 메스를 들어내어 본성 그대로 보인다 그러면 내 문장이 섬뜩해진다 극명하게 나타나서 부연도 할 수 없는 간결한 문장 같은 내 문어는 변한다

자작글-021 2021.05.23

하지

하지/호당. 2021`.5.23 해님의 사랑이 가장 가깝게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지만 내 詩는 겉핥기로 속속들이 여물지 않았다 가장 위급할 때 제 밑바닥까지 기를 빨아내어 험한 고지를 쫓기듯 넘고 난 뒤 그제야 피 터지고 통증을 알아차리는 것처럼 해님의 시선이 차츰 길어져서야 혓바닥 위력인 핥기에 땀방울 뚝뚝 흘리며 헐떡거린다 가장 박절한 시점은 오지 않아 개으른 시어는 뒤죽박죽 치다 해님이 멀어져 가자 화들짝 할라 하지에서 가장 가깝게 사랑을 줄 때 정신 차리지 않았다면 후에는 혼쭐 맞을 일만 남는다

자작글-021 2021.05.23

썩지 않은 삶

썩지 않은 삶/호당. 2021.5.22 비록 한 잎의 마음을 흩어놓고 지구촌과 이별하여 하늘을 날아 별들과 어울려 맘 섞는 동안 흙에 박힌 마음의 뿌리는 썩지 않으리 별들이 밤만 되면 반짝이는 것이 아니다 영원히 반짝이는 것을 사람은 단면만 바라보고 있을 뿐 별의 운행에 승차표 하나로 우주는 물론 지구촌을 문 앞 나듯 한다 땅에 박힌 내 뿌리에도 서광을 받아 재생의 빛을 발하리라 별의 계곡에서 옥수를 마시고 우주의 정기를 받아 삶을 팔팔하게 재생하여 지구촌을 드나들며 노닥거릴 수 있을 거다 태양은 편애 없지 낮 동안 듬뿍 정기 받고는 지구인과 맞대고 교감하는 동안 낙원건설에 보탬을 줄 것이다 썩지 않은 삶은 지구촌의 생애가 백옥같이 맑아야 한다

자작글-021 2021.05.22

우울한 하루

우울한 하루 /호당. 2021.5.20 종일 추적추적 5월 말 무렵에 사흘 잇는 비 잔인하다 파랗게 파랗게 불쑥불쑥 뻗고 싶은 파란 것들 싸늘한 빗줄기에 움츠리다 움츠리다 그만 싫어 싫어 물러가 물러가 햇볕이 좋아 늙은이 봐 내복에 패딩 입고 너 때문이야 너 때문이야 뒤뚱뒤뚱 뜻밖에 북에서 날이 온 철새 떼 착각 착각 오독오독 급히 되돌려 쫓는 바람 획 획 싸늘한 매질 찔끔찔끔 비 맞은 장미 눈 제대로 뜨지 못하고 움칠움칠 찡그리다 찡그리다 그만 눈물 뚝뚝 봄비 같지 않은 소낙비 같지 않은 는개 같지 않은 그냥 우울한 비가 가슴 적시어 내 마음에 가라앉은 우울 앙금

자작글-021 2021.05.21